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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TOMATO

​리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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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미유 데샹.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 엄마와 아빠는 네가 자랑스럽단다. 

  까미유 데샹!

  까미유 데샹!

  까미유 데샹!

  .

  .

  .

  그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저혈압인 그를 깨우는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일어나면 따끈하고 고소한 냄새가 집 안에 가득하다. 씻고 나와 하품을 하며 커피를 내리면, 먼저 식사 중이던 아버지가 부드럽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삐로롱. 맑은 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앞마당의? 어쩌면 심심하신 아버지가 한 마리쯤 집에 들여놨을 지도. 아직 잠이 제대로 깨지 않은 까미유는 멍하니 생각하다가 비치적대는 걸음으로 커피를 들고 방으로 돌아온다. 그쯤 되면 아침마다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까미유라도 슬슬 잠에서 깨어 시계를 확인한다. 7시 45분. 언제나와 같은 시간이다. 적당히 식은 커피를 단번에 위장 속에 때려 박으며 옷을 갈아입는다. 날이 제법 쌀쌀해졌다며 어머니가 꺼내놓은 니트 조끼를 셔츠 위에 걸쳐 입는다. 7시 55분.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다. 여기까지가 집에서의 일상. 

  까미유 데샹!
너는 내 인생에 다신 없을 멋진 친구야!

  .

  직장에서라고 그의 일상이 특별해지지는 않았다.

  대학에 합격하고 부모님이 기뻐하며 사주신 자가용을 몰고 병원으로 향한다. 병원에 들어서며 대학시절부터 이어진 믿음직한 동료 의사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한발 앞서 보조해 주는 든든한 간호사들에게 이른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진찰실에 들어가 옷걸이에 걸쳐진 하얀 가운을 걸친다. 책상 앞에 앉는다. 자, 다음 환자분. 그가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반복하는 말이다. 환절기를 이기지 못했을 뿐인 가벼운 감기 환자들이 이어진다. 환자의 가벼운 고통에도 공감하며 진정 어린 치료를 한다. 이는 그가 많은 이들의 애정 어린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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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 이어진 그의 일상은 퇴근 후에도 비슷했다.

  가끔은 동료 의사들과 함께 맥주 한 잔을 기울이고, 대체로 모든 날에는 집에 일찍 귀가해 부모님과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함께 한다. 욕조에 오래도록 누워 노곤하게 피로를 풀어내고, 푹신한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다. 밤이 깊어 이불을 펼칠 때 즈음에 문을 두드리는 작은 노크와 함께 부모님의 밤인사가 이어진다. 잘 자렴, 우리 아들. 언제나 사랑한단다.

  그것이 그의 일상.

  단조로운 대신 평화롭고, 다정한 일상.

  또다시 태양이 떠올라 하루가 시작되면 까미유의 일상도 다시 굴러가기 시작한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어머니가 꺼내놓은 니트를 곱게 접어 침대 위에 올려놓은 채로 나왔을 뿐인. 그럼에도 언제나처럼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병원으로 향하고, 인사를 하고, 일을 시작한다.
  다음 환자분, 까미유는 관성적으로 입을 연다.

  “안녕하세요.”

  문이 열리며 부드러운 목소리가 인사를 건넸다. 차트에서 눈을 떼어 고개를 들자 봄날 아침의 햇살 같은 금발이 반짝이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단정한 차림새를 갖춰 입고 저를 바라보며 곱게 휘는 은은한 갈색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며 까미유 역시 화사한 미소로 화답했다.

  “앉으시죠.”

  제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자 환자는 바른 걸음으로 걸어와 의자에 앉았다. 걸음 하나에서도 잘 교육받은 태가 났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고도 허리가 구부러지지 않는 반듯한 자세며 손끝만 봐도 알 수 있는 예의 바른 태도가 그러했다. 어깨는 적당한 긴장으로 몸을 바로 세우고, 다리는 예의 바르게 모아둔 것도 마찬가지였다. 눈이 마주치지 않고도 내내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매에는 긴장이 보이지 않았다. 당당함으로 반짝이는 눈은 애정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빛깔이었다. 콧잔등을 가로질러 양 뺨을 잇는 작은 요정들의 발자국마저도 해사한 면모를 빛내주었다. 얼룩 하나 없이 새 옷처럼 잘 다려진 옷을 입고 있는 이는 그 자체로 부유한 집의 자제임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 병원에서 진료는 처음이시군요, 미스터…”
까미유는 간호사가 주고 간 이름 하나만 달랑 적힌 빈 차트를 꺼내들었다.

  “마틴 챌피.”

  환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닥터.”
  “오늘은 무슨 일로?”
  펜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로 양손을 겹쳐 느슨히 깍지를 꼈다.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부드러운 미소는 내내 얼굴 위에 머무르고 있었다. 환자의 여유로운 태도는 의사에게마저도 여유로움을 안겨주곤 했다.

  한쪽 벽, 커튼을 걷어낸 커다란 창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포근했다. 진찰실 내부에 빛이 들어찼다. 조금 쌀쌀했던 어제의 날씨와는 또 달랐다. 그 작은 차이마저도 지나치게 평화로웠다. 대답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을 길게 늘여 저 홀로 향유하고 있는 듯했다. 이마저도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난로를 들여놔야 할 것이고, 다음 계절을 그리워하게 될 테지만. 가까운 미래를 그리는 생각은 환자의 입이 벌어지는 순간 끝을 고했다.

  “…경과를 보러 왔어요.”

  탁. 

  책상과 펜이 부딪치며 거친 소리를 냈다. 펜촉에 긁힌 책상 위에는 작은 스크래치가 나고, 펜이 튕기며 펜촉이 닿은 손가락 하나에는 검은 잉크가 묻어 나왔다. 펜을 내려놓는 자세 그대로 손을 책상 위에 올려둔 채로 까미유는 제 앞에 앉은 사내를 바라봤다.
  표정이 사라진 얼굴로 제 환자를 바라보던 까미유는 다시 그린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죠?”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한 것처럼 까미유는 재차 질문을 입에 올렸다.

  의사의 질문에도 환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입을 다물고, 그저 조용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환자의 답을 유도해야 할 의사가 입을 다물고, 의사에게 자신에 대해 말해야 할 환자가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빛 사이로 흘러내렸다. 짹. 깍. 초침 흐르는 소리가 났다. 결코 닮지 않은 두 갈색 눈의 시선이 엉켰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의사였다.

  티슈를 뽑아 잉크 묻은 손을 닦아내고 아직 책상 위에 쌓여있던 다른 환자들의 차트를 정리해 책꽂이에 꽂아 넣었다. 잠시 후, 책상 위에는 있는 것은 눈앞 환자의 차트와 펜뿐이었다. 흐르지 않는 방 안의 공기가 덥게 느껴져, 걸치고 있던 의사 가운을 벗어 의자에 걸쳐놓았다. 소매 단추를 푸르며 입을 열었다.

  “꾀병 환자는 진찰하지 않습니다.”

  소매를 걷어올리자 드러나는 상처 하나 없는 팔에 마틴의 시선이 닿았다. 침잠하는 시선이 알아볼 수 없는 감정을 잠시 떠올렸다가, 다시 가라앉혔다. 

  “행복하신가요.”

  그것은 대답을 대신하는 질문이었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까미유는 마틴의 질문을 무시했다. 그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눈앞의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 정도였다. 까미유는 펜을 들어 책상을 툭툭 두드리고는 그 펜을 들어 문쪽을 가리켰다. 가짜 환자의 시선은 변함없이 까미유의 팔에 고정되어 있다가,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마치 침묵에서 대답을 건져낸 듯, 저 홀로 납득한 모양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못마땅하여, 까미유는 상냥한 의사에게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짓고야 말았다.

  “행복하신가요.”

  돌아오는 것은 똑같은 질문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웃는 얼굴도, 반듯하기 짝이 없는 태도도.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타앙. 짜증스러운 동작과 함께 책상에 던져진 펜이 핑그르르 나뒹굴었다. 신경질스럽게 넘겨진 머리가 부스스 원자리를 찾았다. 삐딱하게 기울어진 태도로 제 앞에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도중에도 저 홀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당장이라도 수화기를 들어 경비를 불러들이거나, 직접 문을 열어 내보낼 수 있음에도 까미유는 그저 제 자리에 앉아있었다. 창을 넘어오는 햇빛을 구름이 가리울 때 즈음, 까미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게도 이 삶은 악몽이잖아.”

  “저는 행복해요.”

  자동 응답처럼 돌아오는 대답에 까미유는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며 마틴이 미소를 덧그리는 것과 동시에 뻗어진 상처 하나 없는 손이 마틴의 목깃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목젖을 짓누르듯 손가락 마디가 닿았다. 단정하던 셔츠와 크라바트가 손안에서 우그러졌다. 뜯겨진 단추 하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제게 멱살을 잡힌 마틴을 바라보며, 까미유가 지어본 적 없은 일그러진 얼굴로 으르렁거리듯 단어를 짓씹어 뱉어냈다.

  “만족한다면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았어야지.”

  마틴은 그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런 한심하기 짝이 없는 위치에 쳐박을 거였다면…”

  옷을 움켜잡지 않은 반댓손이 책상을 후려쳤다. 타앙! 거친 울림에 꽂혀있던 차트 파일들이 흔들거렸다. 마틴의 이름이 적혀있던 종이 한 장이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창 너머에서는 커다랗게 불어난 구름은 계속 흘러갔다.

  “네 꼴같잖은 소꿉놀이에 나를 끼워 넣지 말았어야지.”

  마틴의 목을 쥐고 있는 손 위로 오래된 상처들이 떠올랐다. 겹쳐져 있던 겉꺼풀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듯, 하나씩 계속 상처가 늘어만 갔다. 피는 이미 오래전에 굳고, 딱지조차 제대로 앉지 못한 잔흔들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칼을 들어 직접 자해라도 하면 저런 모양이 나올까. 아플 수도 없는 과거가 쌓이면 저리 남을까. 엉망으로 그어진 자흔이었다. 늘어나는 상처의 수만큼 주변으로 자그마한 녹색 빛이 일렁일렁 피어올랐다. 세계로부터 어둠이 내려앉았다.

  움켜잡은 손에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목이 졸릴 텐데도 마틴은 순순히 몸에 힘을 풀었다. 그 손쉬움마저도 짜증이 되었다. 제게는 혼란과 분노를 안기고 저 홀로 평온한 듯 있는 모습이 우스워 시선을 피하지도 않는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애정으로 쌓아올린 것이라 생각했던 깨끗한 눈동자 위에 수도 없이 그인 금이 보였다. 이미 오래전에 깨어져서 접착제로 붙일 수도 없을 만큼 엉망이 되어버린 과거의 잔재가 있었다. 그것이 제 본연의 형태를 흉내 내게 만드는 것은 대답처럼 행복 같은 것이 아니었다. 금이 간 곳 위를 덧바르고 있는 것은 집착과 광기, 아집, 오만 따위.
  신의 눈을 가리고 거짓 창조주의 역할을 대행하던 무대 밖, 줄을 쥐고 있는 꼭두각시의 주인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감정의 총체였다.

  “실패였어요.”
  제게 익숙한 빛으로 어둑하게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마틴은 입을 열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란 착한 아들 까미유,

  비밀을 나눌 수 있는 많은 친구를 지닌 까미유,

  타인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까미유…….

  그 모든 조각이 모이면 그건 당신이 아닐 테니까.”

  담담한 목소리가 저주 아닌 저주의 말을 꺼냈다. 원망 아닌 원망이 줄줄이 녹아내려 음절 하나하나에 눌어붙었다.

후회가, 기대가, 울음이── 끊어져 버린 실처럼 허공을 헤맬 뿐인 감정들이 덧없이 흔들거렸다.

  “나의 세계에 당신이 존재하지 않길 바랐어요. 시작을 지울 수 없다면 시간을 지워서라도, 당신이 죽기를 바랐어.”

  지독한 사람. 여유롭고 부드러운 미소를 그려내던 입에서 엉망으로 구겨져버린 단어가 헛웃음처럼 조용히 흘러나왔다. 가장 조용하며 가장 날카로운 진심을 듣고서야 까미유는 손을 풀어낼 수 있었다. 눈을 깜빡이자, 어느샌가 둘은 오직 서로만이 보이는 것의 전부인 검은 공간에 서 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비틀거리는 뒷걸음질로 까미유에게서 멀어진 마틴은, 엉망인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그 순간 세계를 이루고 있는 어둠이 일그러졌다. 압력을 주어 손안에서 쥐어짜듯 뭉개지며 뒤엉켰다. 그 속에서 둘의 형태만이 오롯했다. 마틴을 바라보며 까미유는 입을 열려 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막이 내려가듯 눈앞이 어두워졌다.

  까미유는 밀려오는 졸음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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